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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액. 담금주 만들기

모과주를 담군후 50일 정도 후의 결과

술을 끊은 지 벌써 30년이 넘었는데도 담금주를 만들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습긴 합니다.

30살 무렵까지의 저는 술을 좋아도 했지만 술이 많이 센 편이었거든요. 워낙 술이 세다 보니 술고래, 술통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죠. 술 마신 뒤끝도 좋아서 같이 마시던 일행 다 챙겨서 집에 보내주고 집에까지 큰 문제없이 갈 정도였으니까요. 실수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때문에 술친구도 많았죠.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주로 막걸리나 소주를 마셨고 담금주는 전혀 마시질 않았네요. 담금주를 만드는데 대한 조금의 관심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설혹 있다 해도 며칠만 지났다고 하면 홀랑 마셔버렸으니 기억 속에 담금주란 단어가 남아 있다는 게 이상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속상할 때 술 마시지 말란 이야기가 맞는 말이더라고요. 33살 무렵으로 기억이 나는데 내가 싫어하긴 하지만 가까운 관계에 있던 세 사람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깐죽거리며 시비를 거는데 성질이 나서 미치겠더라고요. 그 사람의 부인이 나와 가까운 사람인데 나한테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상한 부분이 있으면 집에 가서 완전히 난리를 치고 심지어 폭력까지 쓴다고 해서 그분을 봐서 참아 주는데 옆에 있던 두 사람도 그 사람 편을 들어주더라고요.

그 사람이 돈이 좀 많다 보니 가끔 한 번씩 좀 좋은 곳에 가서 술을 사거든요. 두 사람은 자기들 이권에 맞으니 주접스럽게 꼬락서니를 떠는 거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잘못 많은 나는 갈 테니 마음 맞는 당신들끼리 잘 놀아라 하고 나와 혼자서 소주 1병을 병나발을 불고 잤는데 그 이후로 술을 마시면 속이 보대끼는 겁니다. 그 이후로 얼마 동안은 술을 마시긴 했으나 장이 많이 나빠졌단 걸 느꼈고, 꼴짝 비근한 뒤끝이 너무 싫어 술을 끊었습니다.

담금주를 담그게 된 건 술을 끊고 난 뒤였습니다.

시골에 살러 가서부터였으니 대략 25년 전쯤 되네요. 요 근래 몇 년 정도는 담금주를 만든 기억이 없고,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마트에 갔다가 탐스러운 모과가 보이길래 냄새를 맡았다가 갑자기 욕심이 생긴 겁니다.

결국은 소주와 모과를 카트에 담고 말았죠.


10월 말일날 비어있던 페트통을 찾아 모과주를 담그고 말았습니다.

먼저 구입한 모과를 물로 깨끗이 세척한 뒤 깨끗한 수건으로 말립니다.

모과의 상태가 아주 좋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잘 여물어 보이는 노란색이 마음에 듭니다.

향기가 너무 좋고요.

나는 모과향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모과의 꽃이 피었던 자리죠.

이 부분의 향기가 꼭지에 비해서 훨씬 더 좋죠. 별 모양을 한 게 너무 예뻐 보입니다.

한입 베어 먹고 싶은 충동이 날 정도지만 참아야죠.

이름대로 모과(木果) 즉 열매의 과육이 나무토막 같은 과일이니까요.

이곳은 꼭지가 달렸던 부분입니다.

그냥 잡아 당겨서 딴 듯합니다. 꼭지가 떨어져 나갔으니...

담금주를 만들기 위해 세로방향으로 칼로 쪼갰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속이 상당히 망가져 있네요

벌레들이 씨앗을 제법 많이 갉아먹었습니다.

혹자는 씨앗 채 넣으라는 분 들도 계시지만... 이렇게 된 바람에 씨앗을 빼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네요.

싹 다 잘라냈습니다

재료는 모과와 약간의 황설탕. 담금용소주 그리고 유리병 또는 페트병만 있으면 됩니다.

황설탕을 넣는 이유는 술의 색깔을 내기 위함과 설탕의 풍미가 술맛을 배가시켜주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설탕의 당분이 발효가 되며 알코올로 변해 술이 더 독해지더군요.

 

제일 먼저 술을 담을 페트병과 재료(모과)를 잘 씻어 마른 수건 등으로 물기를 말립니다.

그다음엔 잘 씻어서 물기를 말려 놓았던 병에 1/3가량의 모과를 넣습니다.

소주가 3.6리터 짜리여서 황설탕은 반컵 정도로 하였습니다.

그 위에 소주를 병의 90%가 찰 정도로 부어줍니다.

이렇게 하면 끝입니다.

술을 부으면 모과는 위로 뜹니다.

이젠 뚜껑을 꽃 닫고 숙성될 때만 기다리면 되겠죠.

술을 좋아하시는 분 들은 이게 제일 힘들겠지만.... ^^*

알코올이 증발하지 않도록 뚜껑을 단단히 닫고 그 위에 매직으로 담금주의 종류와 만든 날짜를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다음에 모과주를 담굴 때 참고로 하기 위해 각 재료의 넣은 양도 기록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왜 안 했냐고요? 조금 해 보았다고 꼬락서니를 떠는 겁니다. 건방지게... ^^

술을 담군 날이 10월 30일이었는데 뚜껑 날짜는 11월 1일인 걸 보면 제 상태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냥 너그럽게 이해하시길.......

이게 제 술 저장고죠. 말이 좋아 술 저장고지 창고의 한구석입니다.

직사광선을 받지 않고 온도가 낮을수록 좋지만 내가 부자가 아니니 이 정도도 감지덕지죠.

천이나 발 등으로 어둡게 덮고 이대로 마냥 잊고 있어야 합니다.

3개월이다, 6개월이다 말들이 많지만 제 생각엔 1년은 최소구 3년은 지나야 술맛 제대로 납니다. 이 정도 이상 두면 명품이죠.

10년 이상 묵혀 숙성시키면 비싼 양주보다 훨씬 더 맛이 좋습니다.

이런 걸 누구에게 선물해 보세요. 그 사람 죽을 때까지도 못 잊습니다.

소주에 어느 정도만 첨가해도 술맛이 기가 막히거든요.

오늘 포스팅을 하려고 모과주를 꺼내 보았는데 두 개가 나오네요.

통에 비해 술의 양이 좀 많아 작은 병까지 추가해 나누어 담갔는데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작은 병에는 제날자를 기록해 놓았네요.

그래도 아직 죽을 때는 아닌 듯.....

50일이 살짝 넘어가니 어느 정도로 맛이 들었는지 궁금해 시음을 해 보았습니다.

술을 끊었는데 뭔 시음이냐고요?

예전에 제 별명이 '술통'이었다고 말씀드렸죠. 술맛은 기가 막히게 압니다.

시음은 아주 약간 맛을 봅니다. 혀에 묻을 정도로...

그리고 집사람에게 맛을 평가받지요.

 

집사람에게 질문합니다.

'아직 멀었지요?'

집사람이 대답합니다.

'맛없어. 아직 멀었어요.'

 

무엇이든 때가 있습니다.

기다림의 미덕...

진정한 술 애호가라면 덜 익은 거친술보단 맛과 향미 가득한 명주를 드심이.......